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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수십만년이

응축된 생명체

‘황토’라는 말은 근래 매스컴에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용어 중 하나다.
그러나 이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예로부터 황토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과 뗄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황토를 활용한 치료법들이 고서적들에 남아 있고 민간에도 황토 요법들이 많이 전해온다. 한반도에서 풍부하게 볼 수 있는 황토층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성분은 어떻게 구성됐고 그 특징은 무엇인가.
황토는 과연 우리 몸에 효험이 있는 것인가.

우리 옛 문헌에서 황토와 관련된 기록은 상당히 많다.

세종 때 권채(權採)
등이 쓴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1431)
과 선조 때 허준(許浚)
의 “동의보감”(東醫寶鑑·1613)
, 숙종 때 홍만선(洪萬選)
의 “산림경제”(山林經濟)
, 고종 때 이재우의 “왕실양명술”(王室養命術)
이 그것이다.

이들 책에는 황토를 약으로 사용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고대 역사서인 “삼국사기”에서도 황토와 관련한 ‘우토’(雨土)에 대한 기록이 여섯 차례나 보인다.

그러나 중국은 우리나라에 비해 기록이 더욱 오래 되고 다양하다. 기원전 78년 한(漢)
나라 진(進) 황제 때 ‘어느날 아침 북서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더니 붉고 노란 구름이 하늘을 덮고 황토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땅으로 떨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夏)
나라의 우왕(禹王)
또는 백익(伯益)
이 저술한 중국 최고(最古)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
을 비롯해 전한(前漢)
시대 유안(劉安)
이 쓴 “회남자”(淮南子)
, 후위(後魏·6세기)
가사협이 지은 “제민요술”(齊民要術)
에도 황토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또 명(明)
대의 이시진(李時珍)
이 펴낸 “본초강목”(本草綱目)
은 황토의 다양한 효능과 치료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결국 황토라는 말은 기원전부터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약용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황토 형성의 비밀

황토란 문자 그대로 황색을 띤 흙이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보면 황토(黃土)라는 말은 원래 바람에 의하여 운반되어 쌓인, 주로 실트(silt·0.05∼0.01㎜)로 구성된 황색의 광물질(Loes)
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용하는 황토라는 용어는 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암석이 풍화돼 지표 근처에 만들어진 황색 내지 황갈색을 띤 토양을 말한다. 물론 이것도 본래는 바람에 의해 운반돼 오랫동안 쌓인 황토가 지표에서 토양화된 것도 있다.

세계 최고의 황토지대는 역시 중국 대륙에서 볼 수 있다. 중국 본토에서 황토층은 북위 30도와 49도 사이에 주로 분포한 있다.

란저우(蘭州)
와 베이징(北京)
사이에 가장 광범위한 황토대가 형성되어 있다. 또 베이징과 하얼빈 사이와 상하이-푸안(福安)지역, 우루무치(烏魯木齊)와 산둥(山東)·청두(成都)지역의 황토대도 대표적인 곳으로 꼽힌다.
중국내 황토의 분포면적은 총 38만8백40평방km. 유사황토의 분포면적도 자그마치 25만4천4백40평방km나 된다. 이는 각각 중국 대륙의 3.9%, 2.65%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그러면 황토층을 이루는 물질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나. 또 그것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중국의 황토 분포상에서도 잘 나타나지만 중국과 한국의 황토는 중국 북부 지역의 고비사막(약 1천5백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황토가 사막과 관련이 깊은 반면, 중부유럽(독일의 라인강 지역)이나 북미(미시시피강 지역)에 형성된 황토층은 이와 달리 육지빙하와 관련이 있는 것이 차이점이다.

중국의 황토에서 또 하나의 관심거리는 탄산칼슘이 다량 함유돼 있다는 것이다. 탄산칼슘이 황토에 3.6∼21%, 평균 11.6%나 함유돼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양의 탄산칼슘이 존재하는가는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탄산칼슘은 주로 방해석(方解石)이며 0.05∼0.005㎜의 실트 입자로 존재한다. 그 대부분은 고비사막의 건조한 환경에서 석영 입자 표면에 피복되어 있다가 바람을 타고 운반된 것이다.

그러나 방해석의 일부는 대기층에서 침전되거나 지하수 및 생물체의 작용에 의해 생성된 2차적인 생성물이다. 건조기후에서는 침전작용보다 증발작용이 우세하기 때문에 황토에 탄산칼슘의 농집이 가장 적절하게 이루어진다. 황하 지역 황토에 섞인 탄산칼슘의 3∼10%는 대기중에서 침전되거나 지하수로부터 생성된 것으로 확인된다.

고비사막으로부터의 황사의 이동은 시베리아나 남부 몽골에서 형성된 냉기류 전선에 수반된 강한 바람에 의해 이뤄진다. 사막의 먼지들은 난기류에 실려 동남쪽으로 이동하다 우선 황하 지역과 북중국 지역에 가라앉고, 그 일부는 한반도와 일본열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풍화환경, 모암의 종류 등이 황토 발달 결정

기본적으로 황토를 구성하는 물질은 주변 기반암(基盤岩)
의 풍화의 산물이 아니라 주로 중생대 및 신생대 쇄설성(碎屑性)
퇴적암으로 구성된 중국 북부의 고비사막으로부터 대기의 상층기류에 의해 운반돼 퇴적된 것이다.
결국 한반도의 황토의 일부는 주로 봄철에 중국으로부터 날아온 황사(黃砂)가 땅위에 오랫동안 쌓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그 양이 비교적 적게 날아오기 때문에 황토층을 이루지 못하고 지표에 얇게 쌓여 있다가 대부분 빗물에 씻겨 나간다. 한반도의 황토층이 중국에 비해 규모가 작은 것도 그 때문이다.

황토의 형성 비밀은 결국 토양의 형성 과정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일반적으로 지구 표면의 지각을 구성하는 암석들은 빗물 및 지하수와 끊임없이 반응하여 부슬부슬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토양을 만들게 된다. 이것이 풍화작용이다. 풍화작용은 특히 산성비에 의해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풍화작용은 단순히 암석을 부서지게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암석을 구성하는 광물들을 입자의 변두리로부터 용해시켜 마지막에는 암석 전체를 용해시켜 버린다. 또 용해된 용액으로부터 광물(주로 점토광물)이 새로이 침전된다. 결국 암석의 풍화가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단단한 암석의 점토광물이 많은 새로운 광물 집합체로 변하는 것이다.

암석이 풍화되는 동안 지질에서 자라는 식물도 풍화작용에 관여한다. 결국 토양에는 그 상부에 유기물을 다량 함유하는 검은 색깔의 표층이 덮고 있고 그 아래 엷은 색의 용탈대를 거쳐 주로 철분이 많이 잔류하는 다공질의 붉은 색을 띤 토양층이 존재한다. 그 아래에는 다시 황색 또는 황갈색을 띤 치밀한 토양층이 있고 그 밑에는 기반암의 조직을 지닌 부슬부슬한 토양층이 존재한다. 최상부의 유기물대를 제외하면 대체로 황색 또는 황갈색, 적색을 띠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황색 또는 황갈색을 띤 토양을 보통 ‘황토’라고 부른다. 암석의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러한 풍화단면 또는 토양단면의 구조는 모암의 종류·기후·지형·식생 등에 따라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
서해안 지역의 노년기 지형에 발달한 토양은 일반적으로 그 깊이가 깊지만 동부의 산악지형에서는 토양의 발달이 대단히 빈약하다. 또한 토양은 깊게 발달되어 있더라도 황토층은 거의 발달하지 않은 곳도 많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이나 변성암 지역이라 하더라도 서부의 해안 지방에는 깊은 곳까지 풍화가 이루어져 황토의 발달이 양호하지만 동부의 고산지대에는 황토층의 발달이 미약하다.

황토의 발달 정도는 결국 풍화 환경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또한 모암의 종류나 구성 광물 및 화학 조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똑같은 환경 하에 있어도 암석의 구성 광물이 어떠하냐에 따라 서로 다른 토양이 만들어진다. 철분을 소량 또는 거의 함유하지 않은 하동∼산청 지역의 화강암은 풍화작용에 의하여 상부에 황토, 하부에 백색의 고령토를 생성시켰지만 같은 지역에 있는 화강암질 편마암은 철분이 너무 많이 함유되어 저질의 황토만을 생성시켰다.

화강암 지역의 경우에도 강화도나 전남 서해안 지역에는 양질의 황토가 생성되어 있다. 그러나 경상남북도나 강원도 지역에서는 황토의 발달이 빈약하고 소위 풍화의 최하부층에 해당하는 ‘마사’가 크게 발달했다.


산화철 광물이 황토의 색깔을 결정

우리나라의 황토는 토양의 발달 단계에 따라 광물 조성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황토는 보통 황색이나 황갈색을 띠지만 물에 젖으면 좀더 진한 색깔을 띤다. 그 차이는 황토에 들어 있는 산화철 광물의 종류와 양에 따른 것이다.

보통 황색과 갈색은 침철석(goethite)에 의해 나타나며, 황갈색은 레피도크로사이트(lepidocrosite), 붉은 색은 적철석(hematite)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예컨대 하동∼산청 지역의 고령토 광산 지역에서 나오는 지표의 적갈색토에는 적철석과 침철석이 풍부하고 소위 분홍색 고령토도 적철석에 의한 색깔이다.

그러나 토양에 존재하는 산화철 광물은 입도(粒度)
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침철석이 1∼2㎛의 입자일 때는 황색이지만 0.2㎛ 이하일 때는 암갈색을 띤다. 또한 입자들이 치밀하게 집합하여 있으면 검은색을 띠며 적철석도 검은색을 띤다. 레피도크로사이트도 0.5㎛의 입도일 때는 적황색을 띠고 0.1㎛ 이하일 때는 붉은 색을 띤다. 토양의 색을 검붉게 만드는 광물로는 적철석 외에 페리하이드라이트(ferrihydrite)·페록시하이트(feroxyhite)등이 있고 황색을 띠게 하는 광물로는 침철석 외에 슈베르트마나이트(schwertmanaite)·자로사이트(jarosite)가 있다. 태백시 지역의 탄광폐수로부터 침전되는 황색 물질이 슈베르트마나이트와 페리하이드라이트라는 광물이다. 자로사이트는 산성비와도 관련이 있는데 김해평야의 토양에서 종종 관찰된다.

황토의 색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산화철 광물의 종류에 따라 결정되지만 산화철 광물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은 토양 단면에서의 산화 상태와 관련이 있다. 산소의 유통이 용이한 지표 근처의 토양에는 침철석·적철석·레피도크로사이트·페리하이드라이트가 생성되며 철분의 이동이 나타나지 않는다.

황토의 색을 좌우하는 것은 주로 산화철 광물이지만 그 함량은 극소량이며 황토의 주 구성광물은 점토광물과 석영·장석 등이다. 성분으로 볼 때 주로 석영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그 나머지가 점토광물과 방해석·중사광물 등이다.

석영과 장석은 토양의 진화 단계에 따라 그 함량도 변한다. 본래 원암에 석영과 장석이 함유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오랜 기간의 토양화 작용을 받으면 석영과 장석이 모두 용해·유출되어 알루미늄 광물(점토광물)과 산화철 광물만이 남게 된다.

황토의 성질은 황토에 함유되어 있는 점토광물의 종류에 의해 결정되며 황토를 구성하는 점토광물의 종류는 황토가 형성된 지질환경과 수문환경, 지형 및 기후 등에 의하여 결정된다. 식생도 황토의 생성에 영향을 준다. 황토를 구성하는 점토광물로는 캐올리나이트·할로이사이트·일라이트·질석·녹니석 등이 대부분이다.
地下水와 산성비 정화기능도 있다

과거부터 황토는 각종 건강요법에 이용됐고 최근에도 황토의 효능과 관련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황토란 무엇이기에 이러한 효능이 있는 것일까. 과연 과학적 근거는 있는 것인가.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에 대한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광물학, 특히 환경광물학을 연구하면서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광물이 지닌 각종 성질에 대한 연구에서 이러한 이야기는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환경광물학은 광물학 분야에서 특히 새로운 연구분야로서 우리 자연환경에서 각종 광물들의 산출상태·성질·생성원리 및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황토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각종 점토광물, 산화철 및 석영·장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황토를 구성하는 이들 광물의 성질을 밝힘으로써 황토가 가진 특성을 해석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황토에 각종 건강효과가 있는 것은 바로 이들 구성 광물들의 독특한 성질 때문이다.

황토의 주 구성광물인 점토광물과 산화철광물의 성질을 살펴보자.

점토광물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서 그 성질이 다소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이온교환 성질이 있다. 어떤 양이온 성분이 녹아 있는 용액에 점토광물, 즉 황토를 넣으면 점토광물의 결정구조 내에 존재하던 양이온과 물에 녹아 있는 양이온간에 치환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물에 중금속이나 방사성 물질이 녹아 있는 경우에도 스멕타이트나 제올라이트 같은 광물을 물에 넣으면 중금속과 방사성 핵종이 점토광물에 흡착되어 중금속이 없는 물이 된다.

점토광물은 또한 유기물과도 반응하기 때문에 머드팩(mud-pack)
처럼 황토를 얼굴에 바르면 점토광물들이 피부에 있는 기름 등 유기물을 빨아들여 점토-유기물 복합체를 만든다. 지장수는 극히 미세한 점토광물이 물에 분산되어 있는 현탁액이기 때문에 이 물로 세수하면 현탁액의 미세한 점토가 피부에 있는 지방 등 노폐물을 흡수해 피부가 탄력을 갖게 된다. 황토 온천, 황토 목욕의 효능도 이러한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점토광물은 일반적으로 물을 함유하고 있지만 습도의 변화에 따라 점토광물이 가지고 있는 물분자를 방출하기도 하고 흡수하기도 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황토를 건물 내벽에 시공하면 방안 공기의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며 방바닥에 시공할 경우에는 열을 받으면 원적외선을 방출해 건강에 도움을 준다.

황토는 산화철광물에 의하여 황색 또는 붉은 색을 띠는 것이 특징인데 황색 또는 붉은 색을 띠지 않는 백토와는 어떤 점이 다른가. 백토는 이상에서 설명한 점토광물의 성질을 다소 가지고 있지만 산화철광물이 없기 때문에 산화철 광물의 기능이 없는 셈이다.

산화철광물은 우리가 산을 오르다 쉽게 볼 수 있다. 표면이 붉은 색깔로 물들어 있는 바위들이 그것이다. 강원도 태백시의 탄광지대에 가보면 폐광의 갱도에서 골짜기로 흘러내리는 계곡물도 대부분 황색 또는 갈색의 침전물들로 얼룩져 있다. 또 토양 단면에서도 토양이 황색·황갈색·적갈색으로 물들어 황토가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만드는 것이 주로 산화철 광물이다. 그래서 이 산화철광물들을 보통 환경오염물질로 취급한다.

그러나 산화철광물(주로 침철석·페리하이드라이트·적철석으로 구성됨)에 의한 환경의 착색이 보기에는 다소 아름답지 못하더라도 주위에 존재하는 중금속이나 방사성 물질을 흡수하는 성질을 띠고 있다.

이와 같이 황토는 암석이 풍화될 때 생성되는 중금속 같은 유해물질을 잡아 두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하로 흘러 들어가는 지하수를 정화하는 성질이 있다. 또한 최근 들어 문제가 되는 산성비도 토양층을 지나는 동안 토양 및 암석구성 광물들과 반응하면서 중화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황토는 결국 자연환경을 정화하고 인간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잘 보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할 중요한 자원이다.

김홍균 월간중앙 기자 <발취>
월간중앙(http://win.joongang.co.kr) 제287호 199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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